빌라 2층 전기가 자꾸 내려가서 시작된 전기증설 고민
지난여름에 빌라 2층에 새로 들어온 세입자가 에어컨이랑 인덕션을 동시에 켜기만 하면 차단기가 툭툭 내려간다고 연락을 해왔다. 처음에는 그냥 차단기가 낡아서 그런가 싶어 동네 전업사에 연락해 차단기만 갈아 끼우려고 했다. 그런데 와서 보신 사장님이 이 건물 전체 계약 전력 자체가 너무 낮게 잡혀 있어서 아예 전기증설을 해야 근본적으로 해결이 된다고 하더라. 생각지도 못한 큰 공사가 될 것 같아 덜컥 겁부터 났다. 대략적인 견적을 물어보니 한전 납입금이랑 대행 수수료, 인건비 다 합쳐서 180만 원 가까이 깨질 거라고 했다. 한전에 서류 접수하고 대기하는 시간 빼고도 실제 부품을 달고 배선을 새로 까는 데만 꼬박 3일 정도 걸린다는 말을 듣고 속이 탔지만 세입자가 덥다고 난리를 치니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전봇대에서 벽으로 이어지는 전선들이 생각보다 복잡해 보였다
골목길로 나와서 우리 빌라 외벽이랑 연결된 전봇대를 멍하니 쳐다봤다. 평소에는 눈여겨보지도 않던 쇠파이프 같은 게 전봇대 옆구리에 길게 붙어 있는 게 보였는데, 사장님이 저게 전주용입상관이라고 알려줬다. 땅속이나 아래쪽에서부터 전선을 감싸서 위로 끌어 올리는 보호관 같은 역할이라는데, 세월의 풍파를 맞았는지 겉면의 페인트가 다 일어나고 군데군데 녹이 슬어 있었다. 저 시꺼먼 전기선들이 뭉텅이로 들어가 있는 보호관을 통째로 교체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안쪽의 선만 빼서 다시 넣을 수 있는 건지 나로서는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업자분은 상태를 슬쩍 보더니 전주용입상관 내경이 좁아서 굵은 선을 새로 넣으려면 마찰 때문에 꽤나 애를 먹겠다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데 옆에서 듣는 내 마음만 조마조마했다.
셀프로 준비해보려고 케이블커터랑 탈피기부터 샀던 기억
공사비를 조금이라도 깎아볼 수 없을까 싶어서 유튜브를 뒤져봤던 게 화근이었다. 대충 전선 피복을 벗기고 규격에 맞는 걸 미리 사두면 작업 시간이 줄어드니 인건비를 네고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생각이 들었다. 그 길로 인터넷에서 노란색 손잡이가 달린 케이블커터 하나랑 전선 피복을 자동으로 벗겨준다는 탈피기, 그리고 손바닥에 고무 코팅이 두껍게 된 작업용장갑을 한 묶음 주문했다. 택배가 도착하고 혼자 빌라 뒤편 보일러실 근처에 굴러다니는 못 쓰는 전선을 잘라보며 연습할 때만 해도 금방 끝날 일 같았다. 하지만 정작 공사 당일 사장님이 가져온 전선들은 내가 산 꼬마 케이블커터로는 이빨도 안 들어갈 정도로 두꺼웠고, 고압선 근처는 일반인이 손대면 벌금 문제가 아니라 목숨이 위험하다는 핀잔만 들었다. 결국 4만 원 가까이 주고 산 공구들은 한 번 써보지도 못하고 다용도실 구석에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지중화공사 소문과 바닥에서 발견한 지적도근점의 뜬금없는 등장
작업 둘째 날에는 마당 구석을 파내고 접지봉을 묻는 작업을 해야 했다. 삽질을 하던 인부 한 분이 담장 허물어진 자리 바닥에 박혀 있는 작은 놋쇠 못 같은 것을 가리켰다. 자세히 보니 지적도근점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구청에서 땅 경계나 위치 측량할 때 기준으로 삼는 표시라고 했다. 이걸 건드렸다가 나중에 골치 아픈 일이 생길 수 있다고 해서 결국 땅을 파는 위치를 급하게 변경해야 했다. 게다가 지나가던 동네 통장님이 이 골목도 조만간 전선들을 다 땅에 묻는 지중화공사가 예정되어 있다는 얘기를 툭 던지고 갔다. 몇 년 안에 지중화공사를 해서 전봇대를 다 뽑아버릴지도 모른다는데, 지금 비싼 돈 들여서 전봇대에 전주용입상관을 고정하고 외벽에 관매달기 방식으로 전선관을 다닥다닥 붙이는 게 맞나 싶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렇다고 당장 세입자가 더워 죽겠다는데 지중화공사 계획이 확정될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냥 진행하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건물 내부 IDF단자함 주변 정리와 엉망이 된 배선들
바깥 전봇대 작업이 어느 정도 정리된 후에는 건물 1층 계단 밑에 숨겨져 있는 IDF단자함을 열어야 했다. 뚜껑을 열자마자 뽀얀 먼지와 함께 거미줄이 쏟아져 나왔고, 언제 적에 설치했는지도 모를 낡은 통신선들과 전기선들이 떡가래처럼 엉켜 있었다. 그 옆에는 조그만 SCD 분전함이 달려 있었는데 커버가 깨져서 테이프로 대충 붙여놓은 상태였다. 요즘 새로 지은 오피스텔 같은 곳들은 깔끔하게 플라스틱 함체에 정리가 잘 되어 있던데, 20년 된 우리 빌라의 지저분한 배선 상태를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전업사 사장님은 연신 툴툴거리며 이 선이 저 선인지 테스터기를 대가며 일일이 선을 찾아내는데, 옆에서 먼지를 마시며 서 있는 내내 목이 칼칼하고 눈이 매웠다. 선 정리만 따로 비용을 더 청구하겠다는 걸 겨우 사정해서 원래 견적에 묻어가기로 합의를 봤다.
비싼 돈을 쓰고도 다 해결되었는지 여전히 찝찝한 뒷맛
셋째 날 오후 늦게서야 한전 계량기가 새로 걸리고 전기증설 작업이 끝났다. 세입자 방에 들어가서 에어컨을 세게 켜고 인덕션 화력을 끝까지 올려봐도 차단기가 떨어지지 않는 것을 확인하니 일단 안심은 되었다. 하지만 빌라 뒷골목으로 나가서 전봇대를 올려다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찝찝하다. 거뭇거뭇하게 때가 탄 전주용입상관에 새로 덧댄 전선관들이 여기저기 꺾여서 벽을 타고 올라간 모습이 미관상 너무 보기 싫기 때문이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우리 집 벽을 보고 피해서 다닐 것만 같은 기분도 든다. 게다가 정말로 몇 년 뒤에 구청에서 지중화공사를 시작하면 이 벽에 고정해 놓은 관매달기 부품들과 비싸게 주고 설치한 인입선들을 다 철거하고 새로 공사를 해야 할 텐데, 그때 이중으로 돈이 나가게 될까 봐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영수증에 적힌 금액을 지불하면서도 내가 적정 가격에 공사를 한 건지 알 길이 없어 답답한 마음만 남아 있다.

전주용 입상관 덩치 때문에 정말 답답했었네요. 사진 보니까 더 그런가 봅니다.